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맷 버스비 (문단 편집) === 말년 === 1968-69 시즌, 버스비는 시즌 도중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 때문인지 선수들은 이전과는 달리 그리 투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결국 맨유는 11위로 추락했다. 시즌이 끝난 뒤, 루이스 에드워즈 회장은 버스비를 팀의 이사진에 합류시키면서 새로운 감독이 팀을 이끄는 것을 도와주게 했다. 그의 뒤를 이어 감독으로 취임한 윌프 맥기네스는 버스비의 아이들의 일원이었고 맨유 리저브팀의 감독이어서 맨유에서 익숙한 사람이었지만 버스비의 뒤를 잇기엔 너무 벅찼다. 맨유는 그의 재임 첫 시즌 8위로 마쳤고 FA컵에선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다음 시즌에는 리그 하위권에서 머무르다가 리그컵에서 3부 리그 소속이었던 아스톤 빌라에게 패한 후 사임했다. 맥기네스가 사임한 후, 버스비는 다시 맨유 감독으로 부임하여 리그 꼴찌로 추락했던 팀을 수습하여 8위로 마무리지었다. 하지만 버스비는 다시 이사진으로 돌아갔고 맨유는 그때부터 버스비의 후계자를 찾기 위해 17년간 시행착오를 겪었다. 1972년 맨유의 감독으로 부임한 토미 도허티는 선수들이 불만이 있을 때마다 버스비에게 가서 고백한다며 이 때문에 맨유를 개혁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고 밝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0200813_002621.jpg|width=100%]][br][[파일:GettyImages-1089059571577704542624.jpg|width=100%]]}}} || 그러다가 1986년, [[애버딘 FC]]를 이끌고 유럽 대회를 제패한 '''[[알렉스 퍼거슨]]'''이 맨유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했다.[* 이 때 알렉스 퍼거슨은 "맷 버스비를 위해 맨체스터로 간다"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고, 그 말을 지켰다.] 그는 부임한 이래 몇 년간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을 거둬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버스비는 퍼거슨을 끝까지 지지했고 그가 젊은 시절 자신을 닮았다며, 믿어보라고 호소했다. 퍼거슨은 그의 지지 덕분에 경질 압박에서 벗어나 팀의 리빌딩을 성공시킬 수 있었고 버스비의 아이들에 이어 '퍼거슨의 아이들'을 구축하는 데 성공, 맨유의 성공신화를 창조한다. 1988년, 아내가 알츠하이머 병에 걸려 오랫동안 시달리다가 숨을 거두자, 버스비는 이사진을 그만두고 야인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는 회고록을 지으며 여생을 평안하게 보내다가 1994년 1월 암으로 숨을 거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